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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아)’의 고대 의미는 ‘殺(살)’이었다

편집부  |  201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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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골문에 나타난 我

[SOH] 我(나 아)는 고대 병기의 일종으로 현재의 일인칭 대명사 ‘나’의 의미가 아니었다. 현재의 我와 伐(칠 벌), 戰(싸울 전), 戟(창 극), 戣(양지창 규), 등 싸움과 관련이 있는 글자들의 형상은 매우 비슷한데 고대에는 바로 我자와 글자들의 형상이 매우 비슷했으며, 현재의 의미와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我,古殺字 (我자는 고대의 殺(죽일 살)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我와 같은 무기는 상(商)나라에서 전국시대(戰國時代)까지 성행하다가 진(秦)나라 이후 점차 소실되었다. 현재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에 소장되어 있는 서주(西周)시기의 청동 아와 산시(陝西) 푸펑(扶風) 박물관의 서주 시기의 청동 아에서 보면 我의 형상은 서유기(西遊記)의 저팔계(猪八戒)가 들고 있는 삼지창과 비슷하다. 我는 이빨이 세 개 달린 짧막한 병기로 긴 자루에 꽂아 전장에서 사용했는데 가죽 투구도 뚫을 수 있었다.


고대의 我가 병기의 의미로 사용될 때 사람들은 일인칭 대명사로 짐(朕), 과인(寡人), 부재(不才), 불녕(不寧), 소인(小人), 천민(賤民) 및 여(余), 오(吾) 등을 사용했으며, 이 중 여(余), 오(吾)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그 당시 짐(朕), 과인(寡人)은 황제의 전용 명사가 아니었으며 ‘爾雅(이아)•釋詁(석고)’에는 朕은 身(몸 신)이라 해석한다.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한 후, 朕은 단지 천자의 자칭으로만 사용할 수 있었으며, 寡人은 당대(唐代)에 이르러 황제의 전용 칭호가 되었다.
 

我자가 인칭대명사로 사용됐던 제일 오래된 흔적은 은상시대(殷商時代) 갑골문의 我자로 그 의미는 '우리'이다. 我자가 어떻게 병기에서 인칭대명사로 사용되었을까? 원래 이 글자는 회의자(會意字)로 戈(창 과)에서 왔다. 戈는 고대의 대표적 무기로 전장에서 투지를 불러 일으켰으며, 대장부는 창과 방패로 전쟁의 시작을 지킬 수 있었다. 전장에서 무사들은 창으로 스스로를 지켰으며, 무릇 창을 쥔 사람들은 모두 아방(我方, 우리 쪽)에 속했기 때문에, 我에 자아의식을 표출하는 새로운 뜻이 파생된 후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용돼왔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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