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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90)-제21장 전 세계에서 기소 열풍이 불고, 광범위한 법망(法網)을 피할 방법이 없다
 
  
2008-08-01 10:53:00  |  조회 11171




(피할 길 없는 법망 속에서 전 세계적 기소 열풍의 초점이 된 장쩌민, 여섯 번째 시간)

기소 당한 공안부장 – 저우융캉

2001년 8월 27일 오후, 미국을 방문 중이던 쓰촨(四川)성 위원회 서기이며 중공 공안부 부장이자 자칭 장쩌민 아내의 조카인 저우융캉(周永康)은 파룬궁 혹형 박해와 암살 및 모함을 지시한 혐의로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기소되어 해외에서 파룬궁에 의해 기소된 두 번째 중공 관료가 되었다. 소식에 의하면 일리노이주 북부 법원은 이미 이 안건을 입안 처리하였다고 한다.  

저우융캉은 쓰촨성 위원회 서기로 있을 당시 장쩌민을 도와 파룬궁을 진압했다. 그는 암살, 혹형과 실종 등의 수단을 써서 자신의 관할 구역 내에 있는 파룬궁 수련생을 협박하고 전화하는 전 과정을 감독,지시했으며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연좌제 정책을 실행함으로 파룬궁 수련생 박해를 적극 장려하였을 뿐만 아니라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부모가 파룬궁을 수련하면 그 자녀를 퇴직시킨다. 자녀가 수련을 하면 그 부모를 퇴직시키고 퇴직금도 주지 않고 경제적 소득원을 없애 버린다.” 그의 재임 중 쓰촨성에서 박해 받아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은 무려 43명이나 되며 그들은 대부분 참혹한 고문을 받다가 현장에서 숨졌다.  


저우융캉이 쓰촨 지역의 황제로 군림할 당시, 강도 높은 압박 정책을 실시했으므로 그 지역 사람들은 그를 아주 증오하며 “인권 살인마”로 불렀다. 파룬궁 진압과 티베트 자치구의 티베트인들을 박해한 외에 그는 언론 매체의 기자들까지도 협박했다.

언론에 대해 자신의 기사를 더욱 많이 게재하라는 저우융캉의 뜻에 따라 2001년 “(중국공산당 창당기념일)인 7월 1일 ”자 <청두상바오(成都商報)> 1면에는 그의 대형 사진이 실렸다. 이를 본 어느 측근의 충고로 바로 이튿날인 7월 2일, <청두상바오>에는 전날과 동일한 크기의 장쩌민의 사진이  연이어 실리자 성 전체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저우융캉은 제멋대로 헌법과 법률 규정을 깨고 법관 임명장을 배포하는 월권 행위를 했으며 인대와 정협 회의에서 자신의 “중요 강화”를 발표했는데 참석자들은 그의 연설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을 뿐만 아니라 피곤하거나 지루한 표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그는 간부회의에서 제 멋대로 고위 간부를 모욕했으며 종종 “중앙에서 나를 보냈다”, 나는 장쩌민 주석의 측근 인사다”라고 자신을 내세웠다. 그는 또한 스예(實業)호텔에서 수차례 호텔 여직원을 성희롱 했다. 성 인민 대표자 회의 기간 중 머문 호텔에서 공개적으로 성적 요구를 드러내자 성 위원들과 호텔 직원들은 격분했으나 감히 대항 할 수는 없었다..

장쩌민은 자신의 외손자 우즈밍(吳志明)을 상하이 공안국 국장으로 앉히려 했으나 공안부장 자춘왕(賈春旺)이 자신의 수하가 아니었으므로 티베트의 살아 있는 부처 카르마파(Karmapa)의 도주를  핑계로 자춘왕을 비난했고 만약 바오퉁(鮑彤) 같은 사람도 도주한다면 그를 퇴직시킬 것이라고 협박했다. 다음 날 베이징 공안당국은 18명의 사람을 시켜 24시간 동안 바오퉁을 추적 했는데 중공 고위층의 말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저우융캉을 중앙 공안부장으로 앉히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장쩌민은 저우융캉이 혼신의 힘을 다해 파룬궁 진압에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퇴직한 후에도 계속해서 파룬궁을 박해하길 바라여 그를 파룬궁을 직접 진압할 수 있는 공안부장으로 승임시켰으며 그에게 파룬궁 진압 전문 기구인 중공 “610사무실(후에는 “사교 문제 처리 사무실”이란 거짓 명칭 사용)” 부주임과 정치위원회 부서기 자리를 맡겨 그가 거리낌 없이 파룬궁을 박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저우융캉이 베이징 공안부장으로 승임한 후 쓰촨 사람들은 깡패들이 전부 치안을 담당하니 이 나라는 이제 희망이 없다며 탄식했다. 저우융캉과 전임 자춘왕의 정치 스타일은 예상대로 아주 판이 했으며 그는 “치안 방공체계(治安防控體系)”를 만들었는데 그 목적은 장쩌민의 “적대 세력”을 모두 무자비하게 진압하는데 있었다.

장쩌민의 덕분으로 저우융캉은 16대에서 정치국에 들어갔고 국무위원을 겸임한 공안부장으로 승임했는데 장쩌민은 그의 가족 규모가 크지 않고 아들과 외손자 및 조카가 적은 것을 아쉬워했다. 왜냐하면 정치국 회의를 자기 집안 행사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 11월, 캐나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캐나다 법정에 장쩌민, 뤄간과 류징, 저우융캉 그리고 리강칭(李崗淸)등 다섯 명의 전–현임 중공 고관을 기소했다.


기소된 장쩌민의 군사 참모 – 쩡칭훙

2002년 10월, 캐나다,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호주, 아일랜드와  홍콩인 등이 작성한 법률 소송 문건이 연합국 혹형 반대위원회와 연합국 인권위원회및 국제 형사법정에 전달되었는데 피소된 사람은 파룬궁 박해 주도 인물인 장쩌민과 당시 중앙 조직부 부장이었던 쩡칭훙과 정치국 비서 뤄간이었다. 그 소송 문건에는 그들이 파룬궁 박해 운동을 발기하고 추진한 것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책임이 있음과 국제 형사법정이 피고들에 대해 국제 형사법에 의거한 전면적인 조사를 원함이 명시되어 있었다.

2005년 1월 29일, 쩡칭훙의 남미 방문 기간에 페루 파룬궁 수련생들은 페루 최고법원에 쩡칭훙, 장쩌민, 뤄간과 薄熙来(박희래)를 중국 대륙에서 행한 파룬궁 박해 및 집단 학살과 반 인류죄에 대해 기소 했으며 페루 최고법원은 그날 오후 이 소송장을 수락했다.

쩡칭훙은 장쩌민의 군사 참모이고 중앙 조직부를 통제하며 장쩌민의 파룬궁 진압 정책에 필요한 모든 조직 일정과 사상 통일을 책임지고 진행했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쩡칭훙은 장쩌민의 진압 정책을 위해 수많은 의견들을 제기했다고 한다.


유럽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조사령을 받은 중공 고관 – 리강칭

리강칭(李崗淸)은 혹형죄로 프랑스, 벨기에와 대만, 독일, 캐나다, 칠레와 네덜란드 등 해외에서 모두 8번이나 기소되었는데 그 중 프랑스 소송안이 그를 가장 곤혹스럽게 했다.

1999년 6월 10일 경 파룬궁 진압을 결정한  장쩌민은 “파룬궁 문제처리 전문조직”을 만들길 원했고 당시 부총리였던 리강칭은 장쩌민의 술책에 넘어간 첫 번째 인물이 되어 610사무실의 책임자가 되었다. 1999년부터 2003년 퇴임 시까지 리강칭은 계속해서 전국 규모의 진압 행동을 책임졌다.

인권조직인 “조사국제(追査國際)”의 보고서에는 리강칭은 중공파룬궁 문제처리 조직을 맡고 있을 당시 과학기술과 교육, 문예, 노인문제 등 여러 방면의 박해를 지휘했고 전국적으로 반(反)파룬궁 시상식과 전람회 등의 연설에서 파룬궁을 비방했다.

유럽에서 유학한 리강칭의 아들은 “가업을 이어”, 아버지가 근무했던 중국 중싱치처(重型汽車)그룹에서 근무 하던 중 95년 이 그룹과 스웨덴이 41억 위안 규모의 합작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누군가에 의해 40억 위안이 손실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 40억의 ‘손실’ 중 10억은 리강칭의 아들과 관계가 있다.

비록 이 사건을 덮어두려 했으나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다. 회사의 소재지인 지난(濟南)시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일을 알고 있었고 산둥(山東)에는 사회에 불만을 품은 실직 노동자들이 아주 많았는데 리강칭의 아들이 그렇게 많은 검은 돈과 관련 있다는 소문에 더욱 분노했다.

산둥성 위원회 서기 우관정(吳官正)은 당시의 험악한 민심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을 조사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리강칭은 산둥에서 본격적인 조사를 할 경우 그의 외아들에게(리강칭은 딸이 한 명 더 있다) 변고가 생길 것임을 느껴 그는 장쩌민에게 하소연하며 그가 도와주기를 바랬다.

변함없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리강칭을 위해 이 사건은 장쩌민의 “모든 일을 한 번에 처리할 수는 없다” 는 지시에 따라 결과 없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리강칭은 이를 통해 장쩌민 총서기에게 충성하기만 하면 어떤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다.

2002년 12월 4일, 리강칭이 상하이 세계 박람회 대표단을 이끌고 프랑스를 비공식으로 방문하던 기간 중 프랑스와 아일랜드, 캐나다에서 온 4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은 연합국과 프랑스 관련 법률에 의거해 유명한 인권 변호사인 조지 헨리 보티(Georges Henri Boty)와 윌리엄 볼던(Willem Boulden)을 통해 리강칭을 혹형죄로 기소했다.

조지 헨리와 윌리엄 볼던은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를 성공적으로 기소한 유명한 변호사이다. 프랑스 니스에서 기소를 당한 후 리강칭은 더 이상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었으므로 중공은 각종 외교적 수단으로 이를 막고 소송안이 니스의 법정에서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게 하려 했다. 2003년 7월 이 사건을 맡은 변호사 볼던과 보티는 소송을 파리로 넘겼고 파리 형사법정은 이를 수락하였다.

2004년 7월, 파리 형사법정은 중국의 사법기관에 조사를 위탁해, 중국 관계 당국이 프랑스 국민 헬렌(Helen) 여사 및 기타 파룬궁 수련생의 박해 사실 여부를 조사 후 회답 해줄 것을 요청했다. 프랑스 파룬궁 수련생 헬렌은 2001년 11월 톈안먼 광장에서 체포된 후 중국 공안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다. 이번의 중공 고관 조사령은 프랑스 및 유럽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당국에 요청을 한 것이다.  

2004년 12월, 프랑스 형사법정은 파룬궁 수련생의 리강칭 기소안에 대해 예심 법관을 임명하였는데 이것은 이 안건이 이미 정식으로 사법 조사 절차를 밟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프랑스 주력 언론 매체들은 모두 파룬궁의 해외 인권 항쟁이 뚜렷한 진전을 했다고 보도했다.

리강칭은 장쩌민에게 충성하다 해외에서 피고가 되었으나 그 당시 장쩌민 자신마저도 곤란한 입장 중에 처한 상황이었으므로 리강칭은 더 이상 자신의 곤경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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