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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청원자들 톈안먼 광장에 전단지 뿌려

편집부  |  201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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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1월1일 새해 첫날 백여명의 대륙 청원자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톈안먼 광장에 나타나 전단지를 뿌리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이들은 곧바로 경찰에 연행돼 지우징좡(久敬庄)과 마자러우(马家楼)에 나누어 구금됐으며, 차에서 전단지를 뿌린 사람들도 구류됐습니다.


지린(吉林)에서 온 청원자 장옌링(张艳玲)씨는 아들이 무참하게 40여번이나 칼에 찔려 죽었는데 공검법(公检法, 공안기관, 검찰청, 인민법원의 합칭)에서 살인범을 눈감아 주고 사실을 명확하게 조사하지 않아 수 차례 베이징에 와서 청원했지만, 4년 넘도록 신방국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장씨는 “오늘은 톈안먼에 와서 전단지를 뿌리는 사람들이 특별히 많은데, 몇백명이나 된다. 또 차에서 뿌리는 사람도 있다. 차에서 뿌리는 사람은 3개월 구류를 당한다고 한다. 전단지를 뿌린 후 경찰은 우리를 차 안으로 데리고 가서 신분확인을 한 후, 바로 마자러우(马家楼)로 데리고 갔다"고 말했습니다.


지린성 더후이(德惠)시 청원자 왕궈핑(王国平)씨는 금수교(金水桥)에서 전단지를 뿌린 후 천안문분국 경찰들에게 압송되어 지우징좡에 구금됐습니다. 왕씨는 20년간 청원해왔지만, 지린성 공안은 늘 입안 조사를 거부했습니다.


왕씨는 "나는 혼자 톈안먼 금수교에서 전단지를 뿌렸는데 3백여장을 뿌렸다. 나는 아주 억울하다. 1994년 10월 2일 펑샤오쥔(冯少军)에게 마취된 후 차에 억지로 끌려가는 바람에 머리뼈가 부서져 차에서 내던져졌다. 바로 살인멸구(杀人灭口 사람을 죽여 입막음하는 것)이다. 나는 20년간 청원해왔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당시 나를 상해할 때 20일이 지나도록 내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았고, 병원에 20일간 입원해 있는 동안 내 이름을 왕리(王丽)라고 고쳤으며, 후에 고소해 내 이름을 다시 왕궈핑으로 고쳤는데 나의 원래 이름은 왕궈화(王国华)다. 나는 그들이 무슨 음모를 감추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습니다. 


20년간 왕씨는 수 차례 지린성 더후이시 공안국의 보복을 받았고 구류됐습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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