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진강제(晋康帝)의 황후였던 저산자(诸蒜子)는 중국의 10대 황후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일생동안 6명의 황제를 즉위시키고, 역사상 세 번이나 수렴첨정을 해 서태후보다 더 대단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저산자는 허난성 양자이 사람으로, 그녀의 집안은 조부에서 부친까지 대대로 관료를 지냈다. 그녀는 외모가 출중했을 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리했으며, 기품과 견식이 남달랐다.
진성제(晋成帝)는 그녀의 총명함과 출중한 외모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의 동생인 사마악(司马岳)의 배필감으로 점을 찍어 두었다. 진성제가 사망하고, 사마악이 대를 이어 진강제(晋康帝)로 오르면서, 저산자 또한 자연스럽게 황후의 지위에 올랐다.
저산자와 진강제 사이에서 아들 사마담(司马聃)이 태어났지만, 사마악은 황제가 된지 2년 만에 사망해, 2살 된 어린 아들 사마담이 즉위하게 되었고, 저산자는 황태후가 된다. 저산자는 진강제가 병에 걸렸을 때, 남편을 도와 정사를 대신 돌봤는데, 어린 아들이 황제로 즉위해 정국이 평탄치 않았으므로, 신하들은 지혜롭고 정사에 능한 저산자가 수령청정 할 것을 건의했고, 이렇게 되어 그녀의 첫 수령청정이 시작되었다.
진목제(晋穆帝)가 15살 되던 해에, 저태후는 아들을 위해 성대한 즉위식을 해주고, 아들에게 정권을 물려주었다. 그녀는 조서를 내려 “황제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신하들도 국가사직을 중히 여겨 전력을 다해서 어린 군주를 잘 보좌하여 모두 국력에 힘썼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는데, 이를 본 신하들은 큰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마담은 19살에 갑자기 큰 병으로 사망했다. 저산자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졌다. 진목제가 죽고 황위가 비게 되자, 중천 사마욱(司马昱)은 성제의 큰아들인 사마비(司马丕)를 황제로 즉위할 것을 건의한다. 그리하여 사마비는 진애제(晋哀帝)에 즉위하였다. 하지만 그는 전혀 정사에 흥취가 없었고, 그저 미신과 도사들과 놀아났으며, 밥을 먹지 않고 단약만 먹었다. 그는 어린나이에 병에 걸려 골골하게 된다. 대신들은 어쩔 수 없이 상소를 올려 사마비의 숙모인 저태후에게 두 번째 수령청정을 요청한다. 그리고 얼마 후, 진애제 역시 병으로 사망한다.
그 후, 사마비의 동생인 사마혁(司马奕)이 즉위하자, 저산자는 드디어 정사에 관여할 필요가 없어져 숭덕궁에 돌아와 한가롭고 편안한 생활을 하였다. 저산자는 매일 숭덕궁에서 불경을 읽으며 그녀의 일생 중에 가장 평화롭고 한가한 시기를 보낸다.
진나라의 황제는 모두 오래 살지 못하였고, 사마혁은 그렇지 않았지만, 환온(桓温)은 이미 황제위를 찬탈하려는 야심을 품고, 사마혁을 폐위 시키고 승상인 사마욱을 제위 시키자고 건의한다. 저산자는 환온의 음모를 알아챘지만 국가의 안정을 위하여 묵인 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하게 즉위한지 1년 된 사마욱 또한 사망하고 만다. 저산자는 환온이 황제에 오르려는 것을 막기 위해 빠르게 사마욱의 아들인 사만요(司马曜)를 황제로 즉위 시킨다. 그가 진효무제(晋孝武帝)이다. 이런 저산자의 움직임으로 환온은 분노를 하여 대군을 끌고 와 수도 성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저산자는 정세를 평정하기 위하여 외삼촌인 사안(谢安)을 만나 도움을 요청한다. 역시나 황온은 정권을 장악하지 못하였고, 우울한 죽음을 맞이했다. 환온의 죽음으로 황위 쟁탈로 일어날 뻔 했던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진효무제 8년 전진(前秦)의 부견이(苻坚)백만 대군을 몰고 쳐들어왔다. 이를 본 재상 사안은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저태후에게 다시 나와 국가를 돌보고, 외국의 침략과 억압을 막아달라고 요청한다. 이때 저태후는 “국가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는 것은 내가 당연히 할 일이고, 신하들은 이것에 고마워하지도 않아도 된다. 현재는 적군을 물리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저산자와 사안의 인솔 하에 동진의 군사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8만 대군으로 백만 대군을 물리쳤다. 이 전쟁이 역사상에서 유명한 “비수대전(淝水之战)”이다. 비수대전은 전진나라가 동진을 침략하려는 음모를 없앴고, 동진 또한 국가 제위의 연장을 보장 받았다.
전국이 승전을 축하하며, 기쁨에 넘쳐 을 때, 저산자는 별세하고 만다. 그녀의 나이 61세였다. 그녀의 일생은 황위와 정국의 불안정으로 정국을 돌보고 민심을 돌보느라 평온한 날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대부분의 여장부가 가지는 권위감이 없었고, 권력에 대한 욕심도 없었다. 그녀는 오직 지혜와 함축으로, 침착과 냉정함으로 국가의 위기상황에 선뜻 나섰다. 그리고 국가가 안정 되었을 때는 오히려 빠르게 물러나, 관직에 연연하지 않았다.
저산자의 이러한 지혜와 견식은 후대의 사람들이 깊이 존경하고 우러러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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