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著: 육서성
演記: 한치선(타타오)
[SOH] 황원제와 손자우 장군 등이 후군을 재촉하여 그들과 합류 하고서야 숭후호는 비로소 격하게 숨을 몰아쉬며 탄식이라도 할 수 있었다.
“내 이런 대패를 생애에 맛보다니 이 무슨 꼴이냐? 아니 같이 출정하기로 한 서백후 희창 그 사람은 도대체 왜 이리 나타나지도 않는단 말인가? 정말 쫓아오는 소호보다 구경만 하려는 희창이 더욱 미워 죽겠구나!”
숭웅표가 아버지 투구에 붙어있는 나뭇가지를 치우면서 대답했다.
“지금 우리 군병의 사기가 꺾였으니 잠시 움직이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내일 바로 전령을 희창 쪽에 보내어 현황이 급함을 알리고 그를 압박하시어 우리를 돕도록 하시지요.”
“그러자꾸나! 그게 좋겠다. 그나저나 어두워서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구나?”
황원제가 주변을 살피며 대답했다.
“여기는 서문 밖 십리, 오강진(五崗鎭)이라는 곳이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포성이 터지면서 함성이 밤하늘을 찢었다.
“숭후호는 이제 목을 내밀고 죽음을 받도록 하라!”
숭후호 부자와 장수들이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젊고 영준한 장수가 금관을 쓰고 대홍포를 두르고 은합마를 탄 채 화간극을 치켜들었는데 그의 붉은 입술이 엄한 호령을 통해냈다.
“나 소전충! 부친의 명을 받고 예서 널 기다렸노라! 어서 말에서 내려 엎드리지 못하느냐?”
숭후호가 씩씩거리며 뭐라고 말을 못하고 있는데 황원제가 창을 들고 소전충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창이 맹렬한 기세로 젊은 장수의 명치를 노렸으나 소전충은 미리 준비라도 한 듯 가볍게 그의 창을 쳐내며 맞공격에 들어갔다. 황원제도 맹장이지만 이미 기가 꺾인 데다가 패전으로 도망치다가 힘을 많이 뺀 후여서 창 끝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손자우가 그를 도우러 끼어들었다.
하지만 소전충은 이미 손자우가 끼어드는 조짐을 곁눈으로 보고 있었기에 갑자기 몸을 치솟아 그를 향해 창을 내리치니 손자우는 투구가 부서지며 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바로 미늘창의 방향을 바꿔 얼이 반쯤 빠져있는 숭후호의 허벅지를 찔렀다. 갑자기 다리를 찔린 숭후호는 피가 갑옷을 적시는 것을 막지도 못하고 가까스로 말을 돌려 달아났고 아들 응표가 겨우 쫓아가려는 소전충의 기세를 막는데 급급할 정도였다.
“거추장스럽다!”
소전충은 목표물을 가로막은 숭응표가 짜증이 났는지 창을 빙그르르 회전하다가 날쌔게 응표의 왼팔꿈치를 그어버렸다. 피보라가 솟아올라 그의 갑옷과 얼굴을 적시었고 말에서 떨어지려는 그를 주변의 병사들이 황급히 달려들어 구해냈다. 그리고 그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소호군은 20여리를 쫓으며 패잔병들을 지리멸렬 만든 후 징을 울려 다시 본진으로 철수했다. 그야말로 작은 것으로 큰 것을 휘저어버린 대승이었다.
피를 뚝뚝 흘리고 갑옷 속이 흥건히 젖을 정도가 된 숭후호 부자는 하루 종일 도망치느라 초췌해진 몰골을 하고 패잔병을 수습해 보았다. 열에 아홉은 이미 죽었고 나머지도 대부분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숭후호는 서백후 희창에게 구조요청을 보내려 했지만 망설이고 있었다.
“서백후 희창이 진군하지 않고 관망만 하고 있는데 내가 그를 재촉한다고 해서 그가 나서줄까?”
그때 말발굽 소리가 들리며 병사들의 창검 소리가 들리자 숭후호는 기겁을 하여 일어섰다.
한 무리 부대가 다가오고 있는데 두 개의 큰 깃발 사이로 한 장수가 가까워 오는데 그 형용이 가히 무시무시했다.
얼굴은 숯검댕이 마냥 시커멓고 붉은 구렛나루가 덥수룩한데 두 줄기 흰 눈썹에 눈은 마치 금방울처럼 빛났다. 두 자루 담금부(湛金斧)라 하는 도끼를 들고 있었는데 500근이나 되었다. 또 타고 있는 것은 화안금정수(火眼金睛獸)라는 신수(神獸)로 붉은 눈알에 금빛 털을 가진 거대한 사자 형상이어서 주위를 압도하는 힘이 느껴졌다.
그는 다름 아닌 조주후(曺州侯) 숭흑호(崇黑虎)로, 숭후호의 친 동생이었기에 숭부자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형님이 곤경에 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왔습니다! 아니 상처가…”
“오! 아우 왔는가? 내 꼴이 말이 아니어서 부끄럽구나!”
숭응표도 인사를 하며 말했다.
“숙부님! 와 주시어 정말 감사합니다. 끊어진 길에서 겨우 살 길을 만난 것 같습니다.”
숭흑호는 형과 조카의 손을 잡고 힘있게 말했다.
“제가 여기 온 것은 이 싸움 끝을 내버리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끄럽게도 훨씬 더 많은 병력을 가지고도 패한 것은 저들이 결코 만만찮아서라네. 소호가 뛰어난 전략가인 데다가 그 아들 소전충이라는 자가 실력이 무시무시하다네!”
숭부자는 소전충을 언급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본 흑호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형님도 참… 나이가 드셨나 보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여기 왔거늘 뭘 걱정하십니까?”
그리하여 두 군대는 합류했다. 흑호의 군대는 3천의 비호병이 앞장서고 뒤로 2만의 병사가 따랐다. 그들은 기주 성 앞에 진을 치고 목청 좋은 병사들을 내세워 싸움을 걸기 시작했다.
보고를 들은 소호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숭흑호가 왔구나! 그는 무예에 정통하고 전쟁의 심오한 이치를 달통한 사람이라. 우리 성 안에 어느 장수도 그의 상대가 안되니 이 어쩐단 말인가?”
소전충이 어깨들 당당히 펴고 나섰다.
“물이 밀려오면 흙벽으로 막고 병사가 달려들면 장수가 막는다 했습니다. 적장 한 명이 더 왔다 하여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소호가 피식 웃으며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넌 지금 자기 실력만 믿고 상대를 전혀 모르는 처지라 말을 함부로 하는 게야! 숭흑호가 일찍이 이인(異人)으로부터 도술(道術)을 전해 받아 백만군대 가운데에서도 적장의 목을 베는 것을 마치 주머니 속 구슬을 꺼내듯이 쉽게 하느니라. 특히 너처럼 자기 용기만 믿는 젊은 것은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목숨을 버리기 쉬울 것이니 결코 경거망동 하지말라!”
소전충은 화가 치미는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기가 죽지 않고 아버지에 맞받아쳤습니다.
“아버지는 남의 예기(銳氣)를 칭찬하면서 스스로의 위엄을 깎아내리고 계십니다. 소자가 이번에 나가 저 시커먼 괴물을 잡아오지 못하면 맹세코 아버지를 뵙지 못할 것입니다!”
“내 말은… 후회할 일을 애초에 만들지 말란 말이다!”
소호의 말을 채 듣지 않은 채 젊은 피 전충은 말에 뛰어올라 단기로 적진에 돌진하고 있었다.
■ 신응금포(神鷹擒捕)... 철취신응의 위력, 기주의 기개를 꺾다
소전충이 홀로 나와 싸움을 건다는 보고를 들은 흑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일어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전충인가? 귀여운 조카는 들으라! 돌아가서 내가 아버지를 보잔다고 전하라! 여기 전장터는 어린 네가 올 곳이 아니다!”
흑호의 이런 말은 단번에 소전충의 피를 끓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이가 들면 혓바닥 힘만 충실해진다던가? 그 요망한 혓바닥으로 내 창날 맛이나 보시라!”
두 장수가 부딪치면서 그들이 타고 있는 말과 화안금정수도 얽혀 들어갔다. 흑호가 검은 호랑이 같은 기세로 머릴 뒤 흔들며 달려든다면 전충은 전갈처럼 상대의 급소를 노리며 창을 찔러오는데 그들의 창과 도끼가 얼마나 빠른지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다.
소전충은 그와 합을 겨루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평가와 달리 그의 무예가 그다지 대단치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자기의 모든 솜씨를 발휘하여 흑호를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창은 뾰죽하고 끝에 가지가 옆으로 솟았는데 81보법이 있어 끊임없이 변화했으며 72가지 공격술법이 있어 상대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전충은 창을 문지르고 제끼고 속이며 늦추었다가 빠르게 지르는 등 자유자재로 창술을 구사했다.
흑호는 그의 창을 받아내느라 등줄기가 땀으로 흥건해지며 생각했다.
‘소호에게 이 같은 아들이 있다니! 진실로 사자굴에 여우새끼가 없구나!’
흑호는 도끼를 한번 허공에 휘두르고는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소전충은 몸을 젖혀 깔깔 웃어댔다.
“내가 아버지 말을 들었다면 어쩔뻔 했는가? 내 반드시 저 흑호를 사로잡아 군문에 바쳐 아버지가 아무 말 못하게하리라!”
소전충이 맹렬히 흑호의 뒤를 쫓는데 그의 말은 주인의 기세를 받았는지 흑호의 화안금정수보다 속도가 더욱 빨라 금방 그들의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달아나던 흑호가 머리 뒤에 방울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소전충의 추적거리를 가늠해보더니 조그마하게 혼잣말을 하며 히죽 웃었다.
“네 아버지 소호라면 이렇게 미친듯이 쫓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철없는 이 젊은이를 어떻게 요리해 줄거나?”
그는 자기 등에 매달린 붉은 조롱박의 뚜껑을 열더니 쇳소리 섞인 저음으로 주문을 외웠다.
“처러처러치리치리매야매야, 가라!”
그러자 조롱박 안에서 한줄기 시커먼 연기가 솟구치더니 그물 같은 형상으로 퍼져 나갔다. 그 연기 속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리더니 하늘을 가리고 햇살을 받으며 무언가 전충에게 날아들었다.
무쇠 부리를 갖고 있는 송골매!
철취신응(“鐵嘴神鷹)이라는 신수(神獸)이니 바로 흑호의 주특기인 공포의 법술무기였다. 신응이 전충을 쪼려하자 그는 급히 창을 휘둘러 막아냈으나 이번에 신응은 말의 눈을 쪼아버렸다. 그의 말은 왼쪽 눈이 파이고서는 놀라서 펄쩍 뛰는 바람에 전충의 투구가 떨어지고 그의 몸마저 말안장에서 미끄러져 비참하게 매달려 땅에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 되었다.
“사로잡아라!”
흑호가 돌아서며 명하자 그의 뒤를 따르던 비호병들이 날렵하게 달려들어 소전충의 두 팔 두 발을 칭칭 묶어버렸다. 소전충을 따라 나왔던 그의 군사들은 주인이 붙잡히자 힘을 잃고 달아나기에 급급해졌으며, 흑호의 날랜 기병들은 내친 김에 그들을 도륙하고 다녔으며 그날의 결과는 당연히 대승이었다. 원래 장수와 군사가 많지 않았던 기주의 군대에게 이 정도의 패배는 은근히 치명적이었다.
흑호는 승리의 북을 울리면서 본영으로 돌아왔다.
아우의 승전을 지켜보았던 숭후호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소전충을 끌고 오라 하였다.
막사 앞으로 끌려온 소전충은 꼿꼿하게 서서 무릎을 꿇지 않았고 숭후호는 삿대질을 해대며 말했다.
“전번에 오강진에서 설치던 젊은 것이 지금 아주 꼴 좋게 되었구나! 여봐라! 이것을 당장 끌어내 목을 쳐서 전군이 볼 수 있게 효수하여라!”
흑호가 손을 저으며 얼른 만류하며 말했다.
“형님! 서두르지 마세요. 저 애를 베어서는 안될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세 가지 이유라?”
“첫째 저를 살려서 붙들고 있어야 소호가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는 게 하나요, 차후에 소호까지 붙잡아서 그 부자를 조가로 압송하여 천자에게 조치를 받도록 함이 훨씬 좋은 일이며 천자나 우리나 낯도 서는 일이니 그것이 둘이요, 그리고 세번째!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도 무서운 이유이니…”
흑호의 진지한 표정에 후호는 자세를 바로 하고 귀를 기울였다.
“이번 소호의 반역에는 그의 딸이 관련되어 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즉 그 딸이 천하절색이어서 천자께서 후궁을 들이려 했는데 소호가 거절하고 뛰쳐나온 것이 모든 전란의 단초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나중에라도 천자께서 그녀를 후궁으로 삼아 총애하게 되어 소호를 사면해 준다면? 그때 그 오빠를 죽인 우리의 입장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는 우리의 공이 오히려 산더미 같은 죄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그렇겠네! 과연 아우는 생각이 깊네그려!”
그리하여 소전충은 실날 같은 목숨을 유지하게 되었다.
용장이었던 아들 소전충이 이와 같이 적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소호는 그야말로 앙앙불락(怏怏不樂)하며 근심과 분을 삭였다. 다만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용사인지라 아들의 변고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는않을수있었다.
“그 녀석! 교만에 빠져 아비 말을 콧등으로 듣더니 저리 될 줄 왜 몰랐더냐?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저 강적들 앞에 우리 기주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라. 더구나 우리 기주가 궁지에 몰리게 되면 관망을 하던 다른 제후군도 일제히 달려들어 우릴 물어뜯어 공을 세우려 할것인 즉 그것이 세상 인심인 것이다. 이 일을 장차 어찌 할거나?”
소호의 걱정은 분명 이유가 있으며 그 근심은 사실 뿌리가 깊은 것이기에 아무도 섣불리 위로의 말을 건넬 수도 없었다. 소호의 불길한 생각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 성이 격파되고 나면 내 아내와 딸이 포로가 되어 조가로 압송될 것이고 그러면 그 부녀자가 얼굴도 몸도 만천하에 드러낸 채 희롱을 당하다가 나중에는 그 시체마저 제대로 거둘 사람이 없을 것이다. 불쌍하게도.’
소호는 걸어 둔 칼을 들고 비칠비칠 걸어나갔다.
‘차라리 내 손으로 아내와 딸을 죽이고 나도 자결해 그 수모를 면하는 게 낫다. 그리 하면 적어도 후세에 비웃음을 받지는 않으리라!’
소호는 눈에 핏발을 세운 채 후원으로 들어섰다. 그때 그의 앞에 한 소녀가 총총 뛰어 달려와 그를 끌어안는 바람에 그는 뒤에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달기!”
역대 최고의 악녀라는 달기는 과연 어떤 여자였던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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